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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버지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던 첫 날을 나는 기억한다.

일요일.
가족 모두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교회로 향했어. 가까운 교회를 다니다 이사를 한 후에도 바꾸지 않고 다녔기에 매 주마다 시계를 넘어서 가야 했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교회 앞에는 주차를 도와 주시던 집사님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고 아빠도 그들과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계셨지. 무슨 일 때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멀리서 아빠를 불러야 했어.

만기 전역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23살이었던것 같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라는 작은 마음이 있었던거 같아. 아마도 군대까지 갔다 온 놈이 아직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철 안든 어린 아이 같더라고. “아버지”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 때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 땐 아마 군대가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기준점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아.

일요일.
그 날도 멀리 계시던 아빠를 불러야 했는데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큰소리로 “아버지~”라고 외쳤어. 그 순간 뒤돌아 보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바라 보셨지만 눈동자의 움직임으로는 확실히 깜짝 놀라긴 하셨어. 어쩌면 오랜동안 기다리셨던 것은 아닐런지. 그 날 이후로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에게 아빠는 사라져 버렸지.

“아빠와 아버지”라는 단어가 그리 중요하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기준점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몸가짐이 확실히 달라지기는 해. 아빠일 때는 반말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되면 존대에 신경쓰이게 되거든. “아빠, 밥 먹자. 아빠, 밥 먹었어?” 하면 “그래, 먹자” 할텐데 “아버지, 밥먹자. 아버지, 밥 먹었어?” 이러면 아버지가 병이 있거나 탈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아?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아버지는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나오지만, 아빠는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나와. 자아가 스스로 격상되는 단어일 수도 있지만 조심하는 몸가짐을 갖게 되는 호칭이라고 생각해.

그 날 이후로
한참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난 어떤 느낌일까 걱정돼. 이미 아들도 군대를 다녀오고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커버렸지만 아직도 내 눈에 아이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는 아버지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니냐고 다그치고 싶지만 스스로 느끼고 아버지라고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 때의 아버지도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아마도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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