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짓기 5. 시장
집에서 몇 발자국 나오면 동네 대표적인 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골목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지나 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하늘이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흥건한 진흙을 밟으며 옷에 튀지 않으려고 조심히 다니던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양쪽 건물을 이어 지붕을 설치해서 마치 쇼핑몰 안에 들어온 것 처럼 건조한 공간이 되었다. 어린 시철 정취가 가득 담긴 고향 시장 골목이 오늘은 이리도 낮설게 느껴지는 건 그동안 너무 집과 직장 만 고집하며 살았기 때문인것 같다.
마치 먼 지역에서 구경 온 관광객처럼 이리저리 살펴 보며 조금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입구에 금은방부터 옷가게, 화장품가게로 시작되더니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맛있는 냄새로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빵집과 분식집부터 족발, 통닭 등 맛있는 먹거리 가게가 밀집해 있었다. 그 중에 튀김집을 지날 때는 정말 참기 힘들었는데 일단 한 개씩은 다 먹어 봐야 될 것 만 같았다.
몇 걸음 더 걸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과일가게 옆 생선가게 사장님은 이 골목에서 가장 힘드신 분 같아 보인다. 이 추운 겨울에도 축축히 젖어 있는 생물을 꺼내 들고 만지면서 힘껏 내리쳐 퍽 자르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어묵가게 사장님은 항상 불 옆에서 일 하셔서 그런지 여름보다는 겨울이 제철인 듯 옷도 가볍고 날렵해 보인다. 저 한쪽 어두운 골목길 귀퉁이에 한참 나이드신 노부부는 무언가 바닥에서 꿈틀거리시는데 다가가 보니 이 동네 박스같은 돈 되는 것들은 남김없이 다 모아 두신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근처 건물 지하주차장을 오랫동안 창고처럼 쓰셨는데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내 쫏기셧다고 한다. 아마 그 전 주인은 그냥 봐 주셨었나 보다.
시장을 지나 오며 주변을 둘러 봤더니 음식을 만들어 파느라 쉴 틈 없이 움직이며 바쁘신 분들도 있는 반면에 새벽에 가져왔을 물건을 진열해 놓고 여유롭게 서 있는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아예 한 칸 거리 적당한 공간에 모여 웃거나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분들도 있었는데…
정신없이 복잡하고 분주한 시장 골목 끝자락에 이르니 버스도 지나가고, 횡단보도 앞에 택시도 서 있고 따사로운 햇살도 내리 쬐고, 이제서야 이상한 나라에서 돌아온 듯 한 느낌이었다. 온도 차이가 났던지 코끝이 약간 찡 하면서 콧물이 좀 흘렀지만 오늘은 조금 더 걷기로 하고 근처 천변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