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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

일을 하다가 양이 너무 많으면 그냥 징징댔어요.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모두 고생이 심하니 인원을 더 지원해 달라고 읍소만 했어요. 그러면 나를 대신해 일해 줄 사람이 늘어났죠. 입만 갖고 살았어요. 말로 일을 다 했지요. 지적하고 지시하고 소리치고 짜증내고.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말로 일하는 게 제 업무가 되었어요. 그렇게 느껴졌죠. 많이 징징대서 인원을 잘 뽑아 오는 게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으스대며 사무실을 걸어 다녔죠. ”나. 이런 사람이야. 얼른 내 밑으로 기어 들어와!”

나중에 누가 저보고 그러더군요. 오랄 아키텍트라고. Oral-Architect.

네. 전 건축가예요. 

“전 건축을 해요”라고 말하면 다들 시멘트 개고 벽돌 나르는 공사장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건축설계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또 인테리어를 생각하더라고요. ”실내에 도배하고 페인트 칠하는 거 말고 지금 밖에 보이는 저런 건물을 구상하고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공간을 계획하는 일을 해요”라고 다시 말하죠. 왜 그 있잖아요. ‘실땅님’을 유행시켰던 최지우가 나오는 TV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건물 모형이 많은 사무실에서 펜 하나 들고 멋지게 바쁜 척하는 모습 나오는 회사.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건축설계를 하지요. 갑자기 찾아온 대학시절 여자 친구의 제주도 집을 설계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 거기에서 나오는 제주도에 있는 그 집을 직접 가봤는데 발 디딜 틈도 없이 바쁜 카페가 되어 있더군요. 

아무튼 저는 그런 걸 설계하는 건축가예요. 참 멋진 직업이죠.

그래요. 건축가는 참 멋진 직업이에요. 이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3D 직업이라고 저평가하고 있지만 전 이 직업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전 의심 없이 건축가라고 할 정도로 이 직업을 사랑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에 출근하는 날도, 결혼 후 첫 아이가 태어났던 날도 어김없이 야근과 철야에 시달려야 했지만 직접 만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그만큼 뿌듯한 기분도 없을 거예요. 

물론 힘들어요. 힘들죠. 하지만 창작을 하는 직업 중에 마감이 없는 직업은 없고 마감이 있다면 새벽까지 일하지 않는 직업도 없어요. 그만큼 창작하는 우리는 다 고달파요.

어느 날, 가슴이 좀 아파와요. 

무언가 심장이 있는 부근이 차가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왼쪽 가슴 심장 뒤쪽에 얼음 한 조각이 안 쪽 살부터 찢으며 뚫고 나오는 기분이에요. 두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전기장판이 깔려 있는 침대 안으로 들어가 온몸을 웅크리고 진통을 참아봤어요.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안정이 되었을 때 노트북을 들고 검색을 하는데 그때 알았어요. 내가 너무 한심(寒心)하다는 걸.

한심(寒心)하다는 것. 

그동안 전 너무 한심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구글에서 ‘한심’이란 단어를 찾아 읽는 예문들이 어째 다 나를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눈물을 흘릴 뻔했어요.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큰소리를 치다니 한심하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게 되다니 정말 한심했어요. “엉뚱하게 고집을 부리는 네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글이 딱 저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심장이 차가워지는 고통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순간에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내가 아키텍트를 지칭하며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고 입으로만 조잘거리며 으스대고 지냈던 시간이 너무 한심하기만 했어요. 

한심(寒心)으로 아픔을 느끼고 이제 한심(閑心)하려 한다.

이제 차가운 마음을 버리고 한가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걷는 길을 가려고 해요. 날카로운 싸움닭 같은 성격을 버리고 온화하고 인자한 삶을 살아보려고요.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린 아이one과, 얘기도 많이 못해봤는데도 참 밝은 아이가 되어 준 아이two와 이제부터라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제 스스로 혼자가 되려고요. 

기억 없이 지나친 기억

저는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의 길을 아주 오랫동안 걸었어요. 어느날 불꺼진 방 안에서 시를 쓰려고 기억 없이 지나친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데 고등학교 때 일기를 쓰다가 소설을 쓰고 싶어서 긴 시간 원고지를 품에 안고 있던 기억이 생각났어요. 한 줄기 전율처럼 짜릿한 기억이 스치고 나니 떨림 없이 만났던 우연들이 가을 빗줄기 처럼 지나가더군요.

“사람은 명언을 남긴다. 한 번 말한 것이 명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말을 한 것 중에 딱 한 가지가 세상에 남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매일 저녁 일기 맨 아래줄에 골똘히 고민하며 일일 명언을 적던 나의 모습. 인터넷이 처음 도입되던 때 홈페이지라는 것을 만들다가 일간신문에 인터뷰 한 기사가 나던 날. 건축 월간지에 글을 보내고 통장에 글세가 입금이 되는 순간. 블로그 라는 것이 생기자 사진과 글을 올리며 조회수를 보고 기뻐하던 날들.

학생때는 스스로 ‘이과’라고 하고 지금은 ‘천직’이라고 말하면서 본성은 ‘문과’를 지향하고 조용히 글 적는 기쁨을 즐겨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늦었지만 저는 문과의 성향이었는데 잘 몰라서 이과의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참 오래 걸렸네요. 이번 생은.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해요.

생각해 보니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 혼자 스스로 해낸 일은 없더라구요. 학생때는 엄마와 함께, 학교에서는 친구와, 회사에서는 동료와 함께 지냈어요. 이제는 나 스스로 기획하고 조정하고 창작하는 길을 걸어야 해요. 누구도 제 일을 도와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걸으려고 하는 길은. 오랜 시간 동안 공존했던 동료들과 헤어져 ‘팀’이 아닌 ‘솔로’의 길을 걸으려 하니 많이 두려워요. 

기억 없이 지나친 기억

떨림 없이 만났던 우연

추억 없는 시간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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