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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The Witch (Drama 2025)

마녀, The Witch (Drama 2025)

마녀 (2025)

Genres : 미스터리 드라마
Director : 김태균
Actors : 진영, 노정의, 임재혁, 장희령, 장혜진, 안내상, 권한솔, 주종혁, 남중규
Release : 2025. 02. 15.
어릴 적부터 다가오는 남자마다 사고가 발생하는 불운의 여자. 동창생 주인공은 모두 우연이라 생각하지만, ‘마녀’라 불리는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자신도 점점 위험에 빠진다!


우린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어

2023년 8월, 디즈니+를 결제하도록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기꺼이 지갑을 열어 모니터 앞에 앉게 만든 드라마는 무빙이었다. “우린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어”라는 슬로건을 들고 있던 고윤정의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슈퍼 히어로 액션물”이라는 거대한 장르를 K-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화려한 배우진들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매회 출연하는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보며 흥분과 감동 속에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시즌2를 기다리던 이듬해, 무빙 2는 아니었지만 조명가게가 론칭된다는 소식과 함께 예고편이 방송되었다. 이번에는 “호러 스릴러 드라마”라고 한다. AOA 설현이 나온다고 기대한 건 절대 아니었다. 배우 김희원이 감독 데뷔작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면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 호평하며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시나리오로 기대감을 갖게 만든 작가는 우리나라 1세대 웹툰 작가로 알려진 강풀이었다. 그의 웹툰을 단 한 차례도 보지 않은 나는, 단순히 그의 드라마만으로 그에게 흡수되었다. 무빙의 세계관에 자신의 웹툰들을 녹여 시리즈로 엮을 것이라는 기사를 언뜻 본 적도 있고, 무빙과 조명가게 마지막 즈음에 특정 인물을 등장시켜 속편을 암시하는 스팅어를 보여줘서 그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커지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는 감독의 역할이나 배우 캐스팅도 중요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것도 ‘완성된 시나리오’. 애태우며 깊이 생각해 적은 대사 한마디가 성실한 배우의 표정과 감정으로 관객에게 감동과 추억을 남겨줄 것이다.

그의 세 번째 드라마가 2025년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강풀의 기대작이기에 이번엔 TV와 여러 OTT에서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완결이 되어야 시청하는 내 루틴을 깨고 바로 모니터 앞에 앉아 몰입하기 시작했다. 영화 탐정 홍길동에서의 아역이었던 성숙한 노정의를 보기 위해서만은 분명 아니었다.


마녀 (2025)

카지노. 플레이어들의 외적 모습을 보고 프로파일링하며 내레이션 하는 장면. 그것만으로 저런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 좀 심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한 장면이 지났다. 카지노 임원들 앞에서 주인공이 브리핑하는 씬이 나올 때, 난 탄식했다. 책을 읽는 듯한 어설픈 발표, 개나 줘 버린 자신감없는 목소리, 귀찮은 듯 어눌한 발음. 누가 봐도 설득력 없는 대사 한마디와 표정에도 충분히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 회장님. 아. 끝났구나. 이 드라마.

"막말로 고객이 차를 팔든 집을 팔든 우리 알바가 아니잖아?"
"모든걸 다 잃고 두번 다시 카지노에 발걸음을 하지 않게 하는 것 보단 지속적으로 카지노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 준다면 카지노 곳간에 더 많은 고객의 돈이 쌓이지 않을까요?"


이걸 계속 봐야 하나? 하는 생각에 2화까지 보고 멈추었다가 그래도 결말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마녀는 그 실체를 점점 더 드러내고 있었다. 1화에서부터 시작한 고정된 주인공의 얼굴 표정은 중반 스토리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숙원했던 마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퇴사를 하는 주인공을 한탄하며 설득하는 선배의 애절함. 그리고 무표정으로 일관성 있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의 대담함. 심지어 상대에게 얼굴을 수차례 맞는 장면에서도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드라마 주인공은 무슨 매력으로 캐스팅된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함 때문인가?

역시나 시간이 없는 작가의 시나리오는 무수히 반복되는 플래시백으로 영상을 가득 메운다. 반대로 오랜 시간 고뇌한 시나리오는 진행이 빠르고 내용이 알차다. 대사 대부분이 명언이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오래 떠돈다. 드라마 마녀는 전체 영상의 대부분이 플래시백이다. 어떤 반복된 영상은 내 기억으로 4회 이상 나온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흐름이 느리다. 보여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에는 일면식도 없던 남녀가 사건을 쫓아 친구를 찾아 헤매다 갑자기 프러포즈한다. 사랑한다고. 고등학교 때 만나고 헤어졌던 주인공 남녀는, 함께 10분 이상 있어본 적 없던 주인공 남녀는, 갑자기 고백한다. 좋아한다고.

10부작이라는 것을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에 위키를 찾아보다 알게 되었다. 오늘 10부를 봤는데 말이다. 흥미가 없어서 대충 보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마지막 회 같지 않은 어설픈 결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아. 그게 마지막회였다고? 와.. 이렇게 끝난다고?


무엇을 말하고 보여 주려 한 것일까?

시간이 없는 작가의 고뇌하지 못한 시나리오는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 아마도 캐스팅된 모든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본을 읽으며 작가만큼 상상하고 연습하며 소리쳐 대사를 외우는 상황에서 미흡한 부분을 당연히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자격 없는 배우와 감독일 뿐. 또한 이러한 시나리오로 수백 명의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기만한 작가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긴 시간을 기다리며 차기작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일정을 늦춰 시간을 더 갖고 고심하며 완성도를 높였더라면, 작가 스스로나 참여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 때 대형 세계관으로 전 세계를 장악한 헐리우드 영화가 개봉할 때가 되면 극장가가 들썩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외국 배우까지 방한해서 시사회를 하거나 프리미어 인사를 하러 다녀도 예전 같지는 않다. 관객이 국내 영화에 흥미를 가지면서 흥행가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때는 미드나 일드, 해외 애니메이션까지 각광받으며 암암리에 나누어 보고 재미를 느꼈던 때가 있었다. 이 또한 지금은 그다지 흥행하거나 관심을 갖게 되는 외국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 대신 K-드라마가 해외에서 흥행하며 수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유는 출연하는 배우들의 유명세도 있겠지만, 꽉 차고 알찬 완성된 시나리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얼마 전 강풀 작가는 Youtube 어느 한 방송에 나와 유명 방송인과 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새로운 그의 목표와 도전에 공감하며 경의를 표한 적이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반지의 제왕이나 어벤저스 같은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와 영화의 새 장르가 생기겠다고 기대하게 되었다. 또 그의 드라마 무빙조명가게가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 OTT를 장식할지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K-드라마, K-영화에서의 “강풀 세계관”을 기대하며 그에게 완벽한 시나리오를 위한 고뇌할 시간과 천착할 여유를 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가 또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어떠한 장르에 도전할지는 모르지만, 무빙 이상의 작품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그의 수고로운 창작 시간과 힘겨운 글과의 싸움에 진심 어린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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