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뱀의 혀가 시작된 곳

어느 날 우리 집은 갑자기 멀리 이사를 갔어.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지.
어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겠지만, 어린 나는 그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전혀 몰랐거든. 그냥 어느 날 짐을 싸고, 삼륜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낯선 동네에 도착했을 뿐이야.

내가 원래 살던 곳은 마포구 상수동, 하수동, 망원동 쪽이었어.
그때의 나는 그 동네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지. 골목도 익숙했고, 사람들도 익숙했고, 공기의 냄새도 익숙했어. 그런데 갑자기 도봉구 창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거야.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마포에서 도봉이 얼마나 먼 곳인지 몰랐어.
서울 안에서 서울 안으로 이사 온 거니까, 어른들 기준으로는 그냥 이사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그게 거의 다른 세계로 옮겨진 것처럼 느껴졌어. 삼륜차를 타고 오래오래 왔다는 기억만 남아 있어. 그래서 그냥 생각했지.

아, 우리가 아주 멀리 왔구나.

창동에 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막내 이모가 근처에 산다는 거였어.
그때는 몰랐지. 내가 이 동네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그냥 잠시 머무는 곳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어린애가 뭘 알겠어. 그런데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막내 이모가 다니던 교회에도 다니기 시작했어.

내 인생을 이야기하려면 아마 그 교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

처음 창동에 와서 학교생활이 편했던 건 아니야.
전학 온 아이에게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잖아. 지금 말로 하면 왕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때는 그런 단어가 흔하지 않았어. 그냥 텃세가 있었어. 누가 대놓고 나를 괴롭혔다기보다, 낯선 아이를 밀어내는 분위기. 이미 자기들끼리 만들어놓은 질서 안에 새로 들어온 아이가 어색하게 서 있는 느낌.

그런데 그걸 견디게 해준 곳이 교회였어.

교회에는 나를 챙겨주던 선배 형들이 있었고, 누나들이 있었고, 함께 어울리던 동창들이 있었어. 또 나를 좋아해주던 후배들도 있었고. 학교에서는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었어도, 교회에 가면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불러주고, 챙겨주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어린 나에게 꽤 큰 일이었어.

그래서 내 학창 시절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오히려 지금 돌아보면, 그 교회 때문에 재미있는 기억도 꽤 많아. 웃고 떠들고, 같이 몰려다니고, 별것도 아닌 일에 진지해지고, 또 별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어.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가고, 군대도 다녀왔어.
그 사이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도 겪었고,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잘 모르겠던 시절도 있었어.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시 그 교회생활로 돌아오게 되더라.

그게 신앙이었을까.
아니면 신앙이라는 이름을 가진 허망한 끈이었을까.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때는 믿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이 정말 믿음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속해 있고 싶었던 어떤 세계였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야. 그 교회는 내 인생의 꽤 깊은 곳에 박혀 있어. 좋든 싫든, 그곳을 빼고는 내 이야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

그런데 어느 날, 일이 터졌어.

막내 이모의 아들이 교회 후배들과 함께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고를 쳤어. 자세한 상황이야 여러 말이 있었겠지만, 결과는 분명했어. 한 후배가 맞았고,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크게 다쳤어.

그 일은 그냥 젊은 애들끼리 싸운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어.
맞은 후배의 부모가 있었고, 때린 쪽의 부모가 있었고, 교회라는 좁은 공동체가 있었으니까. 결국 부모들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책임이 있는 막내 이모의 가족은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어.

나는 어쩌면 모든 불화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사고를 친 자식은 몰랐을 거야.
자기가 한 행동 때문에 부모의 안에서 무엇이 무너졌는지.
자신의 부모가 그 일을 얼마나 수치스럽게 받아들였는지.
그동안 쌓아온 자존심과 희망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어쩌면 지금도 모를지도 몰라.

막내 이모 부부는 그 교회의 개척 때부터 함께했던 사람들이었어.
오랫동안 봉사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명성도 쌓았지. 그만큼 교회에 대한 애착도 컸을 거야. 그냥 일요일마다 예배드리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바쳐온 곳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자식의 행동 하나로 인해, 그 사무치게 정을 쏟았던 교회에서 내쫓기듯 나와야 했던 거야.
그 수모가 얼마나 컸을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알 것 같아.

사람이 정말 견디기 힘든 건 단순히 어떤 장소를 떠나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오래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
내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세계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서 있을 수 없게 되는 것.

그게 더 아픈 일이었을 거야.

그 이후로 그 가족은 뭔가를 숨기기 시작한 것 같아.
자기들이 겪은 수모를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로 덮으려 했던 것 같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하나의 연극을 시작한 거지.

그리고 그 연극을 진짜처럼 만들기 위해 말이 필요했어.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누군가를 향해 독을 품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들은 뱀의 혀를 가지게 된 것 같아.

곁에 있던 사촌들도 그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어.
처음에는 그냥 가족 편을 드는 마음이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함께 주변을 욕하고, 원망하고, 비틀어 말하기 시작했어. 그 안에서는 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는 분위기가 있었어.

같은 뱀이 되지 않으면, 뱀의 밥이 되는 현실.

그게 참 무서운 거야.
한 가족 안에서, 혹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사람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누구 하나 다른 말을 꺼내면 바로 공격받고, 침묵하면 또 침묵한다고 의심받아. 결국 살아남으려면 같이 혀를 날름거려야 하는 거야.

그때 그 가족들은 굉장한 열등감에 휩싸였던 것 같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안쪽에는 무너진 자존심과 수치심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걸 슬픔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반성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향한 비난으로 바꿔버린 거야.

나는 그게 가장 아프게 느껴져.

한 번의 사건이 한 사람만 망가뜨린 게 아니었어.
그 부모를 무너뜨렸고, 그 가족의 말을 바꿨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염시켰어.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었어.

어쩌면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가 알던 교회도, 내가 알던 가족도, 내가 알던 관계들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열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균열이 생각보다 깊었어.
그리고 그 균열은 단순히 한 사건의 흔적이 아니라, 그 이후 오래도록 이어질 불화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

그들은 결국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선택했어.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이전 교회보다는 훨씬 큰 교회였어.

어쩌면 그 큰 교회는 그들에게 새로운 신앙의 자리가 아니라,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한 무대였는지도 몰라. 작은 교회에서 내쫓기듯 떠났다는 수모를, 더 큰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로 덮고 싶었던 것 같아. 사람은 때때로 자기가 잃어버린 자리를 다른 자리의 크기로 보상받으려 하잖아.

그들에게 그 큰 교회는 신앙의 장소이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열등감을 달래기 위한 안전한 피난처였는지도 몰라.

그곳에서 그들은 다른 친척들과 뭉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그냥 같은 교회를 다니는 친척들끼리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단순한 친목이 아니게 되었지. 그들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었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편을 들고, 같은 사람을 미워하는 작은 세계.

그리고 다시 혀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 혀는 이상하게도 늘 사랑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었어.
걱정돼서 하는 말, 가족이니까 하는 말, 믿음 안에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 말들은 결국 누군가를 씹고 물어뜯는 데 쓰였어.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누구든 말의 대상이 되었어.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중요한 건 그들이 함께 물어뜯을 대상이 필요했다는 거야.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정말 저 말들이 사랑에서 나온 말일까.
정말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저렇게까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은 그저 자기들의 독을 숨기기 위한 포장지였던 걸까.

나는 그래도 죽음 앞에서는 말이 멈출 줄 알았어.
아무리 사람의 말이 독해져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잠시 조용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특히 그 죽음이 가족의 죽음이라면, 그리고 다른 방에는 딸을 잃은 사돈댁이 슬픔에 잠겨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던 어느 날, 처음 사고를 쳤던 막내 이모 아들의 아내가 오랜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에 갔을 때, 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어.
죽음 앞에서는 적어도 잠시 멈출 줄 알았거든. 아무리 뒤틀린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말이 조심스러워질 거라고 생각했어. 특히 다른 방에는 자식을 잃은 아픔으로 슬픔에 잠긴 사돈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또다시 뱀의 혀를 보았어.

그들은 자식의 재산을 처가 쪽에서 노리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어.
다른 방에서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는데, 그 슬픔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의심하고 있었어. 이미 계산하고 있었고, 이미 누군가를 향해 말을 세우고 있었어.

나는 그 장면이 너무 힘들었어.

사람이 죽었는데도 멈추지 않는 말.
슬픔 앞에서도 조용해지지 않는 혀.
상대의 아픔을 보기도 전에 먼저 의심부터 꺼내는 사람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묻게 되더라.

내가 과연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같은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가족이라는 말은 참 무거운 말이잖아.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견뎌야 하는 걸까.
같은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저 말들 곁에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걸까.
그들이 누군가를 물어뜯을 때마다, 나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편이 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나를 오래 붙잡았어.

예전에는 그들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이해해보려 했어.
교회에서 쫓기듯 떠나야 했던 수모, 무너진 자존심, 감추고 싶었던 열등감. 그런 것들이 사람을 뒤틀리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나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는 조금 다르게 느꼈어.

상처가 있다고 해서 모든 말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야.
수모를 겪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슬픔까지 물어뜯을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야.
자기 안의 열등감이 깊다고 해서, 남의 아픔을 의심과 계산으로 더럽혀도 되는 건 아니야.

그날 나는 알게 된 것 같아.

뱀의 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야.
처음에는 수치심에서 시작되고, 그다음에는 변명으로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 습관이 돼. 그리고 결국에는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말이 돼.

그 혀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안쪽을 망가뜨렸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그 혀는 곁에 있는 사람들도 물들이고, 침묵하는 사람들까지 같은 방 안에 가둬버려.

나는 이제 그 방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들을 미워하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저 더 이상 그 말들 옆에 서 있고 싶지 않은 거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씹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하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독을 감추는 사람들 곁에서, 나까지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싶지 않은 거야.

어쩌면 내가 창동으로 이사 온 날, 나는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정말 멀리 온 건 그날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정말 멀어진 건, 내가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말이 더 이상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였는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그곳은 단순히 우리가 살던 동네도, 한때 다녔던 교회도 아니었어.
그곳은 오래된 수치심이 독이 되고, 독이 말이 되고, 말이 사람을 물어뜯기 시작한 곳이었어.

그곳이 바로 뱀의 혀가 시작된 곳이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